|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3세기까지의 야요이(彌生)시대는 일본에서 벼농사문화가 시작되고 정주(定住)문화가 뿌리 박힌 일본 문화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.
야요이시대 유적중에서도 요시노가리유적은 사가현(佐下縣) 간자키(神崎)군 간자키정(神崎町), 미타가와초(三田川町), 히가시세후리무라(東背振村) 등 3개 마을에 걸친 일본 최대의 유적으로 야요이시대 「구니」의 중심적인 취락의 전모와 야요이시대 600년간의 변천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. 일본 고대 역사를 해명하는데에도 중 아주 중요한 자료와 정보가 집결되어 있습니다.
이는 일본의 모습을 기록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[위지왜인전(魏志倭人傳)]에 나오는 [야마타이코쿠(邪馬台國)] 시대를 방물케하는 것으로 국가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.
또 유병동검(有柄銅劍)이나 유리제관옥(管玉) 등의 출토품은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높은 학술적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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★ 요시노가리의 역사
야요이시대는 약 600년간이나 지속된 긴 시대입니다. 요시노가리유적에서는 이 긴 야요이시대 전시기의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. 더욱이 각 시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이 시대에 어떻게 사회가 변화했는지를 알 수 있는 매우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입니다.
요시노가리 역사공원에서는「야요이시대 후기후반(서기 3세기경)」을 복원정비 대상 시기로 하고 지금까지 발굴조사 성과와 민족학 등 다양한 전문분야의 연구를 바탕으로 복원정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.
[야요이시대 전기(기원전3-전 2세기)]
요시노가리 구릉 일대에 분산해서「무라(마을) 」이 탄생했습니다. 그리고 남쪽 일대에 원형해자가 있는 취락이 출현하고「무라」에서「구니」로 발전하는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.
▲원형해자 내부 출토상황
.[야요이시대 중기(기원전2-기원 1세기)]
남쪽 구릉을 일주하는 큰 바깥 원형해자가 만들어집니다. 수장을 매장하는 [분구묘]와 많은 [옹관묘지]가 보이게 됩니다. 취락의 발전과 함께 방어도 엄중해 진 점으로 미루어 보아 [분쟁]이 심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.
▲분구묘
.[야요이시대 후기(기원1-3세기)]
국내 최대급의 원형해자 취락으로 발전해 대규모의 V자형 원형해자로 둘러싸고 특별한 공간인 두 개의 내곽(북내곽/남내곽)을 가지게 되었습니다. 특히 북내곽에서는 대형 건물이 등장하고 요시노가리의 최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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★ 정보
주소
- 사가현 칸자키군 요시노가리쵸 타데 1843
전화번호
- 0952-55-9333
교통수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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JR 요시노가리코우엔역・칸자키역에서 도보 15분
요금 : 15세 이상 400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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